소통을 위한 경계를 짓다. teamSMART, 이호중 디자이너
 
‘Design IST DA+SEIN’ 디자인은 존재하는 것이다. 발명하는 것이 아닌 존재하는 모든 것의 행위가 디자인의 기본이라고 이호중 교수는 말한다. 동네 주민을 위해 개방한 로비와 바람의 방향을 거스르지 않는 건물처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존재케 하는 것. 그것은 환경과 사람을 모두 아우른 최고의 건축이다. 그는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위해 ‘경계’를 짓는다. 이는 소통을 위한 경계로 ‘좋은 경계는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그의 신념을 바탕으로 한다.
 
 
Q. 안산 그리너스 FC를 새로 하셨다고 들었다. 시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라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았을 것 같은데?
 
A. 싸고 좋은 것은 없다. 그래도 최선을 다한다. 이 프로젝트 역시 그런 면에서는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안산 그리너스 FC는) 우리나라 축구단 중에서 재정이 가장 열악한 팀이다. 하지만 시장을 만나보고 축구단을 운영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니 생각이 너무 좋았다. 구단은 스포츠라는 매체를 통해서 문화를 파는 곳이다. 그곳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좀 더 탄력적이면 선수도 변하고 구단을 바라보는 사람도 변한다. 그런 변화를 통한 지역밀착형 컨셉으로 조금씩 발전하기를 바라고 있다. 사실 전에 어느 디자이너가 아파트에 관여했나. 건축가가 지어서 팔았다. 지금은 디자이너가 손댄 아파트들이 브랜드화되면서 변화되고 있다. 지금 구단 역시 그런 면에선 첫 시작인 것 같다. 스포츠를 통한 마케팅, 그리고 스포츠라는 문화를 어떻게 팔 것인가를 고민하는 하나의 기획사로 변화되리라 기대한다.

Q.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
 
A. 구조든, 가구든 공간에서 상하를 나누지 않았다. 그날그날 자기가 앉은 책상이 자기 업무공간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적응하기 어려워했다. 자기 자리에 뭔가를 쌓아두고 숨겨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것이다(웃음). 공간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자연스럽게 바뀐다. 탄력적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Q. 구멍이 뚫려 있는 시멘트 파티션이 독특하다.
 
A. ‘좋은 경계가 좋은 이웃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경계를 짓기 위한 장치가 아니고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경계 짓기인 것이다. 시멘트 파티션도 그런 의미다. 난 항상 서로 어떻게 경계 지으면서 소통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래서 내 프로젝트에는 항상 ‘경계’라는 단어가 쓰인다. 블록에는 책이 진열될 수도 있고 트로피를 올릴 수 도 있다. 보통 작업을 할 때 공간을 만들어놓고 될 수 있으면 파운데이션은 하지 않는다. 구조만 만들어놓고 그들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Q. 보통 시멘트는 외장재로 많이 쓰이는데 실내로 끌어오신 이유가 있나?
 
A. 시멘트는 건축 재료 중에서 무엇으로든, 어디서든 쓸 수 있는 재료다. 컨셉과도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 자재 역시 물성만 고려하고 외부와 내부 경계 없이 활용한다. 나는 물성이 물성 자체로 보여지게끔 하려고 한다. 구조를 만들고 색을 칠해서 공간을 채우기보다는 재료가 재료로써 마지막 셋팅이 되며 그대로 표현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Q. ‘소통을 위한 경계’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A. 주역을 쭉 공부해왔다. 주역을 공부하면서 얻은 결론은 모든 동양 철학의 마지막 염원이 밸런스로 통한다는 것이다. 내가 선을 어떻게 그어야 하는지, 공간에 어떻게 밸런스 비율을 조절할 것인지를 한 번 더 짚어준다. 그런 의미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는 나의 제자들에게도 무조건 철학 공부를 시킨다. 나 역시도 아직까지 그 선을 찾아가고 있지만(웃음).
 
Q.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셨다고 들었다. 어땠나?
 
A. 내 평생의 디자인 언어를 갖게 된 아주 충격적인 계기가 있다. 독일 유학 당시, 동양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교수님이 “이번 학기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더라. 그래서 (내가) 막 거창하게 얘기하니 말을 딱 자르고 하시는 말씀이 “지금 서울의 삶이 전통적인 것들을 얼마나 보존하고 있는지, 만약에 그게 부족하다면 현재 삶에 전통을 녹여냄으로써 얼마나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지에 대해 프로젝트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는 것이다. 처음엔 황당했다. ‘유럽의 건축과 디자인을 배우러 왔지. 이미 한국과 동양에 대해 평생을 공부하고 왔는데, 다시 6개월을 허송세월하라는 얘기인가’하고. 그러니까 교수가 씩 웃으면서 “나는 너무나 흥미로울 것 같은데, 내가 제안한 걸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이다. 그래서 ‘아, 이 사람이 내가 동양에서 왔다고 무시하는구나. 나를 얕잡아보고 내 첫 프로젝트 시작이 좀 더 편안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구나.’하고 오판을 했다. 근데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면서 생각하는데 아무런 대답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앨비스 프레슬리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도 떠올릴 수 있는데 그렇게 자신했던 한국의 전통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하겠다고 했다. 2년동안 유럽에 가서 한국, 동양에 관한 공부만 했다. 첫 학기는 창피할 정도로 많이 혼났다. 다른 학생들은 교수를 번갈아 가며 수업 듣는데, 난 오직 그 교수한테만 수업을 들었다. 반드시 인정받겠다는 일념 하에. 지금은 절친한 친구가 됐다.

 

Q. 교수님의 입장에서 혹은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디자인에 대해 얘기해주신다면?
 

A. 디자인은 컨텐츠를 보는 작업이다. 사람이 어떻게 생활하고, 행위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그래서 디자이너는 평생 컨텐츠를 읽어내고 들여다 봐야 한다. 다양성이 담기면 좋겠다. 디자인 언어에 자기 색깔이 담겨서 ‘누가 봐도 이 사람이 했구나’ 싶은. 한국 삶의 속도는 너무 빠르다. 새로운 모양의 의자가 있다고 하자. 의자 디자인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2~30년 된 디자이너들이 미완성을 거듭하며 지금의 브랜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그것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외국의 유명한 다리들이 있다. 직접 마주하게 되면 허무할 수도 있다. 물론 조형적인 것만 보는 사람들의 눈에 한해서다. 그 속에 있는 역사성과 컨텐츠를 의식한 채 본다면 달리 보일 것이다. 우리 나라는 그 역사성을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한다, 너무 짧은 시간에. 결국 전통을 가장한 의미 없는 디자인이 얹어지는 것이다.

 

Q. 역사성을 갖기 위해서는 전통을 회복해야 하나?
 

A. 전통을 회복한다? 지금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건축기행이라고 500년 된 기와 밑에 가서 처마를 들여다본다. 조상님들이 어떻겠나. 그 분들은 건축을 공부한 적도 없다. 옛 것을 유리 케이스에 넣고 ‘우리의 문화’라고 하는 순간, 문화는 유리병 속에 갇힌, 점지된 문화로 끝나버린다. 그건 문화를 보존할뿐 이어가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들이 새로이 컨텐츠를 구성하고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진정 전통을 계승하는 길이다.

고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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